“혼종(hybrid)은 혁신적 탄생의 원천”

  28 04월 2024

“‘끔찍한 혼종’이란 말이 있듯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혼종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가 많다. 그러나 페르시아나 로마와 같은 제국의 문화는 혼종이었다. 제국의 영향을 받은 문화식민지는 혼종성을 키움으로써 제국과 식민지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문화권력을 전복할 수 있다. 탈식민주의 학자 호미 바바(Homi Bhabha)가 말했듯이 순수성은 신화에 불과하고 ‘제3의 공간’인 혼종성에서 새로운 형태의 정체성이 출현할 수 있으며, 이러한 혼종적 정체성은 본질적으로 유동적이고, 역동적이고, 적응력이 강하며, 새롭고 혁신적인 무언가를 탄생시키기 때문이다.”

문화 전문 저널리스트 문소영씨가 한국 문화를 ‘혼종’이라는 콘셉트 아래 7개의 키워드로 구분해 바라본 《혼종의 나라》를 펴냈다. 영화, 드라마, 예능, 미술 등 다양한 시각으로 문화와 사회적 이슈 등 일상의 이면에 질문을 던지고 그것들에 숨겨진 오늘의 한국 사회와 한국인의 특징들을 포착했는데, 문씨는 개인과 세대, 나아가 우리 사회와 전 세계가 열광하는 한국 문화의 트렌드를 꿰뚫는 하나의 단어로 ‘혼종(hybrid)’을 꼽는다.

혼종의 나라│문소영 지음│은행나무 펴냄│268쪽│2만원

문씨는 자신이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수혜로 자유와 물질적 풍요를 누림과 동시에 전통적이고 유교적인 사고방식, 집단주의적 가치체계에도 익숙한 혼종세대인 ‘X세대’라고 말한다. 《대장금》에서 《오징어 게임》까지,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BTS’까지 한류가 발전·성장하며 변화해 나가는 것을 생생하게 목격하며 성장한 세대로서, 우리 문화 곳곳에 끓어 넘치고 있는 이 혼종적 특성을 중심으로 한국 문화를 분석한 7개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돈’. 과거 유교적 전통과 집단주의를 빠르게 대체해 가고 있는 자본주의는 영화 《기생충》의 대사 “부자니까 착한 거야”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과 같이 현재 우리 사회 최고의 가치로 자리 잡았다고 분석한다. 둘째는 ‘손절과 리셋’. 자유주의·개인주의가 기존의 가치관을 탈피하는 과정에서 야기하는 다양한 모순적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셋째는 ‘반지성주의’. ‘내 무지와 네 지식은 평등하다’는 식의 반지성주의적 사고방식이 야기하는 문제에 대해 조명한다. 넷째는 ‘하이브리드 한류’.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국 문화의 힘이 결코 ‘한국적’인 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실은 지극히 ‘혼종적’ 상황에서 분출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를 살펴본다. 다섯째는 ‘신개념 전통’. 정의와 범위가 매우 모호한 ‘전통’이라는 개념에 의문을 던지고, ‘달항아리’처럼 많은 이가 오랜 전통이라고 여기는 것 또한 현대의 산물임을 밝힌다. 여섯째는 ‘일상의 마이크로 정치’. 진보와 보수, 인종, 성별, 성적 지향, 종교 등 수많은 가치관이 충돌하고 분열하는 우리의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정치적 문제를 다룬다. 마지막으로 ‘포스트 코로나와 인공지능’. 디지털화를 가속화한 코로나19 팬데믹과 이를 계기로 우리 생활 속 깊숙이 들어온 인공지능 그리고 그것이 빚어내는 다양한 문제와 상황,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내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