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세상을 풀어낼 열쇠를 찾아서
최빈국에서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의 앞날에 빨간불이 켜졌다. 미래 먹거리는 사라져가고,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백약이 무효다. 의대 정원 등 갈등 국면마다 ‘강 대 강’으로 치달아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평화적 정권교체나 촛불혁명 등이 진짜 이 땅에서 일어난 일이 맞는가 하는 의문까지 들 정도다.
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이지만 우리 사회 지성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쳐온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이 문제를 고심하는 책을 출간했다. 저자는 9년간 이 문제를 고심하면서 집필했고, 제목이자 해법으로 내놓은 것이 ‘숙론(熟論)’이다.
“숙론이란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는 말싸움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이 왜 다른지 궁리하는 것, 어떤 문제에 대해 함께 숙고하고 충분히 의논해 좋은 결론에 다가가는 것이다.”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면서 상대방의 주장에는 귀를 닫은 이들에게 저자는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찾으려는 것이다”는 제안을 한다.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나와 상대가 다른 점을 숙고해 보고, 자기 생각을 다듬으려고 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인식 수준을 공유 혹은 향상하려 노력하자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직접 숙론을 이끌었던 사례를 책에 담았다. 대학교수로서 줄기차게 시도했던 토론 수업, 생태학자로서 수족관에 갇힌 돌고래 ‘제돌이’를 바다에 풀어주기까지의 과정, 위원장으로서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회의를 주재한 경험까지 생생하게 들려준다. 저자는 책을 숙제, 교육, 표본, 통섭, 연마로 나누어 차근차근 숙론의 기술을 이야기한다.
“상대를 제압하려는 토론을 넘어 서로 존중하고 대화하는 숙론 문화가 정착된다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가 존경하는 진정한 선진국으로 거듭날 것이다”
문제는 숙론이 ‘하면 좋은 것’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숙명’과도 같다는 것이다. 이미 수많은 위기에 직면한 지구는 ‘지속 가능성’을 의심받고 있다. 그 속에는 폭주기관차처럼 자원을 사용하는 우리나라에 대한 문제도 당연히 있다. 숙론을 읽으면 당연히 가장 생각나는 곳이 국회다. 민의의 전당이지만 숙론이 아니라 자기주장만 넘치는 이들에게 1990년 넬슨 만델라가 석방되며 혼란에 빠진 남아공의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진행했던 몽플뢰르 컨퍼런스를 숙론의 이상적 예시로 소개한다.
“구체적이고 결정적인 해결 방안을 도출하려 서두르거나 동의를 강요하지 않고 자기 입장과 시각을 뛰어넘어 함께 대화하며 공동의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는 중립적인 제3의 조정자 역할이 중요하다. 모든 참여자의 의견을 고루 경청하고 특정 집단의 편향된 시각에 휘둘리지 않을 애덤 카헤인 같은 탁월한 진행 중재자를 초빙해 진행 과정의 전권을 맡긴 것이 성공의 결정적 관건이었다.”
면책 조항: 이 글의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이 기사의 재게시 목적은 정보 전달에 있으며, 어떠한 투자 조언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만약 침해 행위가 있을 경우, 즉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정 또는 삭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